
뮤지엄아워스와 카메라 소메티카
예전에는 자주 진입했던 다중지성의 정원, 최근에 장사를 하며 조금 멀어져 버린 곳에서 카메라 소메티카라는 책을 소개 받았습니다다.
지금 운영하고 있는 소모임 커뮤니티(커먼즈를 위한)를 조금 더 풍족하게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구매를 했고, 회화와 영화, 영화는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지만 장사만 하면서 자본주의적 사고를 지속하는 내게 다른 시야의 각도를 내비쳐주지 않을까 해서 구매한 책입니다.
생각보다 책이 두껍지 않았고, 생각보다 책이 가벼웠습니다.
작가나 책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중요하지 않았고, 단지 내가 원하는 목적 : 커뮤니티 뮤지엄아워스에서 내가 가진 지적허영심과 알량한 지식을 포장할 수 있는 미사여구들을 참조하고 싶었고, 장사할 때는 사용하지 않았던 단어들과 생각들을 조금 더 꺼내고 싶었습니다.
내가 운영하는 소모임은 영화 <뮤지엄 아워스>의 이름을 차용하여 만든 모임이다. 뮤지엄 아워스에 나오는 한 장면이 내가 전시를 보며 추구하는 바와 맞았고, 여러 명이 함께 영화를 보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만든 모임입니다.
그런데 이 책, '카메라 소메티카'의 5장에서 영화 <뮤지엄 아워스>를 분석한 이야기를 풀어낸다고 하니 정말 기뻤습니다.
아직 다 읽진 않았지만, 몇몇 구절을 보며 아 이 책을 사기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표준적 해석에 구애받지 않는 작품 관람자의 자유로운 사유를 예증할 뿐 아니라, 예술적 의미가 초월적 보편적이지 않고 순간적, 개별적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개인 감상자가 하나의 작품을 맞대면하는 순간 양자 사이에는 고유한 인지적, 심리적 관계망이 형성된다. 이것을 벤야민의 용어를 빌려 아우라 aura의 체험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
박선, 카메라 소메티카, 232p 인용
관람객의 각성 추구와 기쁨
작가가 작품에 독자가 무엇을 느끼게 만든다라는 것은 욕심입니다. 관람자는 자유롭게 작품을 해석할 권리를 가지며, 롤랑바르트의 작가의 죽음에서는 작가가 작품을 해방시키는 순간, 작가는 죽는다. 그 작가는 다시 관람객의 해석에 의해 되살아납니다..
그리고 우리 모임에서 하나의 작품을 여러 개인 감상자가 대면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고유한 인지적, 심리적 관계망이라고 표현한 것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뮤지엄아워스에서 관람객들은 미술관의 스펙터클에 매료된 무심한 군중이 아니라 개별 작품에서 아우라의 충격과 내면의 각성을 추구하는 단독자들이다.
박선, 카메라 소메티카, 235p
내가 운영하는 '뮤지엄아워스' 란 소모임은 무료전시관람, 공공미술관 전시 관람을 추구합니다.
예술의 전당이나 대림미술관 등 입장료를 내고 전시를 관람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위의 말처럼 미술관의 스펙터클만을 보러 간다고 해야 할까?
예를 들자면 스트리트우먼파이터(스트리트맨파이트)에서 자주 언급하는 '와우포인트(wow point)'를 관람하기를 기대하러 갑니다.. 미술작품이나 공연 아티스트가 관객이 예상하지 못한 퍼포먼스나 내용을 언급하며, "이거 봐? 대단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전시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단어 아우라의 충격과 내면의 각성이란 표현은 단지 와우 포인트를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개별 작품 아니 더 나아가서는 하나의 전시(큐레이팅)를 관람하고 (나 식대로 풀이하면) 내가 보지 못한 것의 단면을 살펴봄으로써 내 자신의 표피를 깨는 것이 중요하다 아니 필요하다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조금 더 천천히 이 책을 읽어볼 텐데, 오랜만에 하나의 좋은 전시를 본 뒤 한 번 더 보러 가는 좋은 기분이 듭니다.